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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art thinking

나의 미술이론

초기 : 예술이라 불리울 수 있는 것은 예술가 또는 작품을 제작한 자의 예술적 의도가 최상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반박 : 예술적 의도는 누구에 의해서 규정되며 무엇으로 기준으로 판단되는가?

재구성 : 예술이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다. 언어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일상적인 의사소통과 달리 예술은 예술적 의사소통을 하게 된다. 예를들어, 산행을 하다 마주친 의자 하나를 본 사람은 의자를 예술적으로 대하기보다는 쉬어갈 목적으로 안치된 의자로 생각한다. 그러나 전시장에 놓여진 똑같은 의자는 사람들에게 예술적으로 이 의자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이 사례가 알려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예술작품이 예술로써 성립되기 위해서는 예술가의 의도도 일차적으로 중요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과의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반 고흐의 그림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쓰레기로 취급되었지만 오늘날에는 거장의 작품으로 인정받는 이유도 반 고흐의 그림이 오늘날 사람들과 예술적 소통을 했기 때문이다. 즉, 예술작품은 시대와 공간에 따라 달라질 질 수 있는 고정불변의 존재이다. 어제의 예술이 오늘의 쓰레기가 될 수 있고 오늘의 쓰레기가 내일의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과의 예술적 소통이다.

이 이론은 조지 디키와 아서 단토가 주장했던 에술이론이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예술

반박: 예술 또한 삶의 대안으로써의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 속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들이 예술로 변모될 수 있는 잠재적 가치를 지닌다. 반고흐의 그림이 그 당시 쓰레기로 취급되었더라도 오늘날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잠재적인 예술적 가치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예술적 언어 또한 다른 의미의 예술 언어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언어란 기호학적으로 재해석된 언어이며 따라서 흔히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가 아니라 사물 또는 환경을 지칭한다)
내가 주장한 커뮤니케이션으로써의 예술은 소문자 아트라면 잠재적 대상까지 예술적 범주에 포함시키는 이 주장은 대문자아트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