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리 살라(Anri Sala,1974)

틀라텔롤코 충돌(Tlatelolco Clash), 2011, 비디오(돌비 서라운드 사운드 5.1),11분 49초


개인적으로 '무각사' 작품들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

손풍금 악기가 생소했지만 종이를 악기에 집어넣어 음악을 연주하는 행위 자체가 날 너무 매료시켰다.

전시관리자에게 물어보니깐 우리나라에는 이 악기가 없고 하나 수입했던 걸로 아는데 쉽게 고장났다고 한다.

한때 역사적 아픔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상처가 덮어지고 그곳에는 낯선 고층건물의 생경함과 역사적 유적지의 황량함이 공존하는 장소에서 손풍금 연주가 띠엄띠엄 여러사람들에 의해 울려퍼진다.

그 사람들 중에는 이 역사적 아픔을 경험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무작정 연주를 하게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영상은 그 아픔을 객관적으로 알리고 되짚기보다는 그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손풍금 연주를 통해 그 기억을 상징적으로 환기시킨다.  그렇지만 그러한 추상적 행위가 더욱더 강렬하게 보는 이를 자극한다. 


 분절된 멜로디는 마치 그 장소가 지나쳐온 역사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여러 사람에 의해 완성되는 하나의 곡은 그것이 결코 파편화된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느끼게 해준다.


개인의 기억으로만 남아있던 역사의 흔적은 하나의 연주를 통해 사적인 기억에서 보편적인 행위로 전환되고


 하나의 패턴처럼 연주를 통해 나타나는 사람들의 반복적인 행위는 각기 다른 소리로, 그 소리는 또다시 이미지로 전이되어 시간과 공간, 과거와 현재, 기억과 물성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그것은 마치 한 장소에 담겨진 역사적 사실이나, 개인이 가지고 있는 아픔, 혹은 보는 이에게 전달되는 감정등이 결코 이질적이고 상관없는 그 어떤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분절된 연주 사이사이에는 각기 다른 삶의 기억들을 안고 있는 사람들의 오고가는 발걸음이 존재한다. 그래서 영상이 전개하는 시간적 흐름과 연주가 진행되는 시간적 흐름은 나란히 평행을 이루며 보는 이에게 마치 그곳에 직접 있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매끄럽게 다듬어진 곡 '머물까 떠날까'는 다시 해체되고 그 해체된 곳은 분절되어 다시 하나의 곡으로 완성된다. 

머물고 떠남. 또다시 머물고 떠남.

 

 한 역사적 공간은 아픔의 흔적을 지닌 채 또다시 새로운 역사를 쌓아나갈 것이다. 인간의 삶 또한 머물고 떠나는 사람들 사이에 아픔과 기쁨의 흔적을 채워나가며 죽는 그날까지 하나의 음악을 완성하는 것.

그래서일까. 이 작품 속 연주되는 음악은 경쾌하면서 슬프다. 마치 한 개인의 삶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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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라이프 (Wolfgang Laib,1950-)

망망대해(Unlimited Ocean),2011,약 2만 5000개의 쌀 더미, 9개의 꽃가루 더미


무각사 대웅전에서. 


얘술사의 소용돌이치는 흐름밖에 조용히 물러나있는 작품.

천년의 불경소리처럼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가장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것들은

예술적 형식을 초월한다.



쌀 한웅큼을 집어다가 하나하나씩 천천히 놓으면서 작품을 만들어가는 

작가의 움직임이 더 눈에 선하다.

작품을 보면서 그 작품을 만드는 작가의 행위에 더 마음이 가는건

이 작품 주위를 돌아보는 내 발걸음과

작품을 하나하나 완성시키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딛는 작가의 마음가짐

이 작품 안에 오롯히 공존하고 있기 때문. 

그래서 이 작품은 

단일명사로 칭하는 것이 오히려 작품을 미완성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마침표 없이 뻗어나가는 것이야말로

이 작품이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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