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ashion/my fashion

미운10살의 기억.



초등학교 10살때 나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었다. 아파트 뺵빽한 한국에서와 달리 미국 한적한 시골의 동네는 울창한 숲을 가진 마당이 있는 작은 집들로 이루어져있었다. 거기서 내가 1년동안 다닌 학교가 바로 GLENWOOD Elementary School이다. 


매해 옷장을 정리하면서 발견하게되는 이 옷을 내가 쉽사리 못 버리는 이유는 이 옷 속에 그 시절 내가 겪은 추억들이 베어지는 아련한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떄문이다. 마치 이 옷을 버리면 10살의 나 또한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이 이 옷을 몇년이고 계속 간직하게 만들었다.


옷을 집어들어 내 몸에 대어보았다. 마치 10살의 또다른 나와 마주한 느낌. 어느덧 내가 이렇게 컸다 싶을정도로 작은 사이즈의 옷은 지난 10년이 넘은 시간들이 육체적 성장의 시간이었다면 앞으로 남은 시간은 정신의 성장의 시간이 될 것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느끼게 만들었다.


셔츠에 그려진 녹색 악어는 이 학교의 상징이다. 문득 이 녹색 악어와 관련된 내 경험이 떠올랐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미술시간에 다른 아이들보다 그림을 꽤나 잘 그렸던 내 주위에는 학생들이 언제나 몰려들었다. 사실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해봤자 한국식 미술 교육을 받아왔던 내가 조금 묘사력이 더욱더 뛰어나을 뿐이었다. 아이들의 개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미국의 교육 시스템상 단지 배운 방식이 다를 뿐이었지만 아이들의 탄성에 콧대가 조금 높아진 나는 미술에 대한 자부심이 컸었다.


그날 그릴 미술 주제는 학교 심볼인 악어를 캐릭터화시켜서 그리는 것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와인을 들고 있는 입술을 붉게 칠한 요염한 악어를 그렸고 아이들은 또다시 그림을 참 잘그린다고 칭찬을 해줬다. 아마도 나는 미술에서만큼은 너네들보다 어른이야!라는 걸 은근히 보이고 싶은 그런 유치한 생각 떄문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매번 그림시간 이후에 잘 그린 그림들 몇개를 추려 벽에 붙여주셨는데 당연히 이번에도 내 그림이 붙을꺼라고 예상했던 나의 기대와는 달리 내 그림은 선택되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느끼건데 아마도 순수하고 학생다워야할 캐릭터가 요염하고 섹시한 게다가 술을 들고 있는 악어였으니 아무리 멋있게 그렸다 하더라고 선택될지 만무하였다. 


그렇지만 그날 꽤나 실망했던 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는 채 미술선생님만 원망했었다. 그래도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미술시간이었던 걸 보면 그 시절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참 좋아했었다.


이 옷을 보면 마냥 그림 그리는게 좋았던 10살의 내가 생각난다. 초등학생 시절 당차게 화가가 될꺼야라고 말하던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미술을 공부하고 있는 걸 보면 그떄의 포부가 단지 헛된 말은 아니었던것 같다. 


이 옷을 입고 있던 시절 세상은 그 작은 몸집이 견딜 수 있을만한 크기였다. 그러나 내 몸집이 커질수록 세상은 그보다 훨씬 더 크게 크기가 커지고 무거워졌다. 지금처럼 언젠가 내가 이 세상을 품고서 무거운 세상을 어깨에 이고 낑낑거리던 지금의 나를 추억하는 시절이 오게 될까. 이제는 보풀거리는 이 작은 옷만이 그때 그 시절의 크기를 어렴풋이 알려줄 뿐이다. 괜시리 센치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