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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Philosophy

<영화>'잘 알지도 못하면서'_홍상수




홍상수 영화 특유의 한국적 찌질한 맛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영화.

보면 볼수록 거북하고 불편하지만 마치 꾸미지도 않고 과장시키지도 않은 딱 고만큼의 현실을 확대경으로 보는 것 같은 느낌.

보면서 난 절대 이 찌질한 분위기 속의 주인공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굳은 다짐을 하게 만드는 영화.

영화를 보면서 보편적이고 평범한 한국의 보통의 남자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게 되면서도 왠지 그 영화 속 주인공과 내가 딱히 큰 차이가 없음을 느끼게 만드는 영화.

영화속 인물들의 찌질함과 치졸함에 혀룰 내두르면서도 왠지 그것이 그들의 '어쩔 수 없음'이라는 것에 공감가는 영화

너무 현실적이라서 다큐멘터리 같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지만 그것이 치밀한 연출임을 은연중에 느낄 수 있는 영화

현실적이지만 비현실적인 뜬금없는 사건들이 튀어나오고 그 뜬금없는 사건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현실감을 불러일으키는 영화.


장 뤽고다르 식의 연애를 꿈꾸는 한 여자의 판타지는 홍상수로 끝난다는 우스개 소리가 공감이 간다.


한 친구는 이 영화를 보고나서 다른 영화에서 등장하는 한 가지 주제로 수렴되는 영화의 스토리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 같다고 말하였다. 그러니깐 예를 들면 스파이더맨에서는 삼촌의 죽음은 스파이더맨이 나쁜 악당을 물리치는 동기로 작용하고 스파이더맨이 그중에서 가장 으뜸의 악당과 대결하여 결국은 승리한다는 내용은 영화의 큰 구성이다. 그 중간 중간에 보여지는 거대한 스팩타클과 연애의 달콤함은 뽀너스. 그러기에 관람객들은 줄거리가 어떻게 흘러가고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다. 만약 스파이더맨이 또다시 시리즈로 나올걸 아는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 영화가 완결된 형태가 아닌 구멍을 남겨놓을 것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홍상수 영화는 도무지 결말을 알 수 없다. 마치 이 영화가 끝난뒤에도 사람들의 삶은 계속될 것이라는 듯이 한국에 사는 보통의 남자 여자 중에 한명을 우연히 골라 그들이 겪고 있는 삶 일부를 잘라서 있는 그대로 방출시키는 느낌.

그래서 여자가 강간을 당하든 남자가 그를 지극히 존경하는 후배로부터 돌로 쳐맞든 인간은 그냥 살아간다. 어떤 커다란 사건이 터져도 인간은 앞을 향해 나아가야한다. 그렇기에 영화는 한 여자가 강간을 당한 뒤 느꼈을 고통과 괴로움 그리고 이로인한 삶의 변화 따위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인간은 어떤 일이 닥치든 그저 살아가야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삶이다. 


팔씨름을 하자던 뜬금없는 제안과 남자들 사이의 은근한 자존심경쟁 그리고 속으로는 민망하고 불편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스스로를 속이는 모습, 똑같은 말이더라도 다른 사람이 했을 때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는 인간의 모순성, 그리고 남녀 사이의 사랑보다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섹스.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타이틀이지만 그 세세힌 일상을 채우는 것은 결국 가장 단순한 것으로 회귀되듯이 아무리 거창한 예술론을 주장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결국은 찌질한 것들이라 조소하는 것들과의 사투이다.


인간은 위대하며 찌질하다. 


그 모순성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최고의 것이다.

내가 홍상수 영화를 불쾌해하면서도 보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