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hinking

양탄자 가게 아저씨 잘 지내시나요?




이곳을 들어가게 된 건 순전히 빨래를 가지러 간 사이에 기숙사 문이 잠겨졌기 때문이다. 열쇠는 방 안에 있고 룸메이트는 오려면 한참 넘었다. 그렇다고 15불이나 내고 학교관리자를 불러서 문을 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무작정 나선 것이 그 첫번째 시발점이었다.


날씨는 화창했고 나는 실내에서만 입는 면치마에 슬리퍼차림이었다. 정처없이 길이 닿는대로 걸어갔다. 카메라가 없으니 뭘 찍어야 한다는 강박증도 사라졌고 핸드폰이 없으니 연락을 기다리거나 시계를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눈이 가는대로 발이 옮겨지는대로 길을 갈 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걷다보니 나름 이곳에 오래 지냈다고 자부한 내가 모르는 곳들이 너무 많았다. 게이와 레즈비언을 위한 서점에서부터 작가가 수공예로 직접 만든 공예품을 파는가게에까지 그러다가 도착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처음에는 간판도 없고 아무런 설명도 씌여져 있지 않아서 가게인지 개인 작업실인지 긴가민가했다. 그래서 들어갈지 말지 쭈빗쭈빗거리던 나에게 과장된 손짓으로 들어오라며 아저씨가 날 안으로 이끄셨다. 마치 함부로 손을 대면 안될 것 같은 양탄자들이 바닥에 깔려있길래 일부러 피하면서 걷다보니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걸음걸이가되었다. 아저씨는 그런 나를 보면서 양탄자는 원래 밟으라고 있는건데 그렇게 안 밟으면 어떻하냐며 마음껏 밟고 들어오라고 하셨다. 생각해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무조건 작품처럼 생긴것만 보면 접근불가능 레이저가 작동하는것처럼 자동반사적으로 피하게되는 나를 보니 박제가된 박물관의 유물에만 익숙해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주 단순한 이치를 아주 깔끔하게 깨닫게 해준 아저씨에게 짐짓 고마움을 느꼈다. 아저씨는 태평스럽게 사과를 깎아먹으면서 연신 "유노우 유노우~"를 외치셨다. 이 양탄자는 중세시대의 것이고 저 양탄자는 빅토리아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며 또한 저쪽에 걸려 있는 것은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이라며 아주 설렁설렁한 태도로 아주 꼼꼼하게 설명해주셨다. 언제 이렇게 귀한 양탄자들을 다 모으셨냐고 하니 베시시 웃음을 지으신다. 


이곳의 분위기는 다른 상점들과는 뭔가가 달랐다. 주인과 손님의 관계를 판매자과 소비자로 만들어버리는 그 익숙한 공기가 가신 자리에는 오직 양탄자 구멍 뚫린 부분을 메꾸는 한 장인과 그의 작업실을 잠시 들른 손님만이 존재할 뿐이였다. 어쩌면 나는 고객을 호객하는 그 어떠한 군더더기 없이 있어야할 것들만이 그대로 존재하는 그 단순함에 반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치 할아버지 안방에 온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아주 익숙한 자세로 손님에 아랑곳없이 쟁반의 사과를 깍아먹는 아저씨의 태도 때문일지도. 


미국 한복판에 떨어진 아라비아 어느 도시에 온 것처럼 이 공간의 이국적인 느낌과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이 세계의 거미줄에 미처 포획되지 못한 장소가 내 뇌리에 강하게 자리잡혔다. 나는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신기하게도 그날 내가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우연히 나는 배관을 수리하러 온 관리아저씨를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쳤고 아주 자연스럽게 방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계획적으로 시간을 보내야한다는 강박증적 태도에서 벗어난  여유가 가져다준 선물일까.









 이곳을 다시 방문한건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뒤였다. 이곳과 이제 작별하기 불과 2틀전이기도 했다. 마음이 조급한 나는 정들었던 이곳과 작별을 위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용캐도 시간을 내어 방문한 것이었다. 아저씨는 날 기억하시고는 오랜만이라며 인사를 건내셨다. 이번에 방문했을때는 작업 테이블에서 양탄자 수정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특유의 여유스러움은 여전하셨다. 나는 사진을 찍어도되냐고 물었고 아저씨는 '오브 코올스-'를 외치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이집트에서 가져온 작은 양탄자를 살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특별히 20달러에 주겠다는 말과 함께. 나는 학생이고 이제 곧 이곳을 떠나기 때문에 구매는 어렵다고 말했고 아저씨는 그럼 언제 다시 이곳에 오냐고 물으셨다. 나는 언제가 될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꼭 다시 이곳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했고 아저씨는 그럼 4년동안 이 양탄자를 날 위해 보관해두겠다고 하셨다. 와우-날 기억해주는 양탄자가 있다니. 나는 4년 안에 이 곳을 다시 와야하는 빛을 지고 있는 셈이었다. 꼭 이곳을 다시 오고 싶다는 일종의 변형된 소망. 나에게 이곳을 다시 와야하는 작은 이유를 만들어준 아저씨의 센쓰가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꼈다.

 

 아저씨는 나에게 사진으로 찍을 만한 양탄자를 직접 풀러서 보여주셨고 그중에서 양탄자게 짜여진 그림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로 하였다.  그 중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었다. 아래 양탄자의 그림은 양치기 아저씨와 개에 관한 이야기이다. 양치기 아저씨는 개에게 자신의 양들을 잘 돌보라고 일러두고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런데 그 사이에 개가 양과 친구가 되어버려서 자신의 의무를 까먹은 것이다. 이를 알게 된 양치기 아저씨가 개를 나무에 묶어 혼을 내는 장면이다. 짐짓 장식적이고 화려한 줄만 알았던 양탄자에 이런 인간적이고 유머스러운 이야기가 담겨있다니 양탄자는 그것을 밟고 사는 인간들만큼이나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녹아든 사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는 미국이라는 곳은 유럽처럼 자신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으로 인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배척하지 않고 누구나 와서 쉽게 살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만큼 삶의 개성이 부족하다는 내용도 덧붙이셨다. 상당이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아저씨처럼 양탄자를 사랑하는 사람이 모든 것이 존재하기에 아무것도 없는 이 공간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아직도 이곳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단지 우연히 발견한 가게라고하기에는 나에게 너무 많은 의미를 전달해주었기에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을 것 같다. 4년 뒤에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 여전히 태평스러운 몸짓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아저씨의 모습이 그려져 괜시리 입가에 미소가 남는다. 


 

'think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순히 녹색이기 때문만은 아닐꺼야.  (0) 2012.09.29
삼단케이크.  (1) 2012.09.23
Beautiful Okay.  (1) 2012.07.03
관광객이 아닌 한 사람으로써.  (1) 2012.06.29
잡생각  (0) 2011.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