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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ing

Beautiful Okay.

미국에 있었을 때, 외국인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 한국어를 쓰지 못하기에 걸러지는 표현들이 참 단순해서 좋을때가 있었다. 물론 내 부족한 영어 실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뭔가 한국어로 대화할때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들, 나를 포장하거나 단순하게 생각해도 될 것을 좀더 복잡하게 생각하거나 상대방 기분 봐가며 돌려 말한다거나.. 그런 잔여물이 쏙 빠져나가니 내가 스스로에게 느끼는 무게도 그토록 가벼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단순하게 감정에 충실하고 더 솔직하고 더 꾸밈없을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은 여유롭고 단순한 내 생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부족한 표현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한국친구들 몫지않게 더 진솔할 수 있다는 것은 역시 인간관계에 언어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그 중에서 내가 유난히 많이 들었던 단어와 유난히 많이 썼던 단어가 있다.


첫번째는 Beautiful.

두번째는 It's Okay.


'Beautiful' 이라는 단어는 참 사람들이 많이 쓴다. 그런데 그 억양이 대체로 비슷하다. 뷰우-티퓨울~!

아! 그 어감이 너무나도 좋다.  모습에 행동에 태도에 혹은 작품에 대하여 사람들은 뷰우티푸울이라는 단어를 쓴다. 그것은 결코 Pretty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이미지에 관한 한정된 표현이 아니다. 뷰우티푸울은 행동, 삶,  모습에서 내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무겁고도 아름다운 단어를 미국인들은 참 쉽고 자주 표현한다. 방학때 아무도 없는 도자실에 혼자 도자를 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친구는 참 아름답다고 했고 그래픽 디자인 수업 때 선생님이 맘에 드는 이미지를 가리키며 "뷰우티푸울-!"이라고 외치는 걸 듣고 싶어서 밤을 새워가며 열심히 작업했다. 내 룸메이트는 한 친구가 직접 만든 음악을 들으며 "음악이 좋긴 한데 뭔가 영혼이 빠진 느낌이야. 한마디로 좋은데 아름답진 않다고"라며 냉정한 평가를 내렸고  예쁘게 생겨서 남자들에게 인기는 많지만 남 험담을 하고 다니는 친구에게는 "예쁘지만 아름답진 않은 칭구야!" 라며 새초롬한 표정을 지었다. 


뷰우티푸울.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단어 뷰우티푸울. 언젠가 나도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모습을 만나면 이렇게 외칠 것이다.


"YOU ARE SO BEAUTIFUL!"


 미국에서 내가 자주 쓴 표현 'It's Okay" 


사실 이건 우습게도 한국적 성향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쓰게 된 것이다.

그러니깐 우회적으로 거절의 의사를 표시할때 내가 썼던 것. 그래서 이 말 뒤에는 항상 (그렇지만 너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으면 좋겠어.)가 내포된 것이었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빨리 알아차렸을 것이고 좀 둔한 사람이라면 정말로 괜찮다고 생각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미국인 사람들은 항상 상대방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내제되 있는지 상대방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경우가 자주 있다. 물론 정말로 괜찮아서 이 단어를 쓰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에게 있어서 보통의 경우 이 말은 안 그러는 편이 더 좋겠어라는 의미가 더 강하게 내포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좋고 싫음이 분명해서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이렇게 뚜렷하게 말하는 편이기 때문에 종종 난감해질 때도 있었다. 오히려 이 말을 잘 파악하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동양계 사람들이었다. 그게 참 신기했다. 미국에 있을수록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해진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다. 


 한번 한국에서 친구들끼리 모여서 밥을 먹고 카페를 갈까? 이런 얘기가 누군가의 입을 통해 나왔다. 나는 괜찮다는 의사표시를 했고 친구 한명도 "아 나는 괜찮아!"라고 말했다. 결국 세명 모두 괜찮다고 말했고 그렇게 우리는 헤어지려고 했다. 근데 친구 한명이 "카페 가자며 안가?'이렇게 반문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 친구의 괜찮다는 의미가 카페를 가도 좋다는 의미였다. 


괜찮아.


사실 굉장히 모호한 말이다. 그래서 좋다는 걸까 그걸 하면 좋겠지만 안그래도 괜찮다는 것일까.

그런데 이 말이 한국에서는 아주 잘 통한다. 


 참 한국말은 모호한 것이 많다. 그런데 그만큼 언어가 아닌 다른 감각으로 소통할 여지가 많다는 것 아닐까. 말로는 상대방의 진짜 의도를 알아차리기 어렵기 때문에 그만큼 그 사람의 표정이나 태도 혹은 평상시의 모습에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말만 믿지 않는다. 그게 반어법이 될지 중의적인 표현법으로 눈치빠르게 알아차려야 하는건지 혹은 안괜찮은데 거짓말을 하는건지..그것은 상대방의 세심한 배려에 달려있다.  직접적이고 솔직한 표현도 좋고 모호하고 중의적이지만 좀더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요구하는 표현법도 좋다. 그렇지만 뒤끝 없이 깔끔한 샐러드 언어보다는 뭔가 오묘하고 깊은 말이 우러나오는 된장국 언어가 나는 더 정감있다. 나는 아무래도 한국인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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