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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art thinking

카페그림.


인사동의 어느 한 갤러리에 갔을 때 이야기이다.
전시회에 걸려있느 그림들은 꽃그림이였다.
우아하고 색감 좋은 그림.

인선오빠는 그 그림을 일명 '카페그림'이라고 칭했다.ㅋ
카페에 분위기 조성용으로 적합할만한 그림.

그림이 한 작품으로써 예술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카페라는 특정한 공간의 분위기 조성용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림의 의미가 결정이 난다.

인선오빠는 미술이 미술로써 가치를 가지기 위해서는 그림을 통한 분위기가 중요할 뿐(그림이 가지는 의미)
그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월간 아트 옥션지를 보다가 우연히 이우환 작가의 그림의 가격이 나왔다
1998년도에 3천5백만 하던 그림이
이제는 가격이 급격히 뛰어올라
2007년에 17,538,500,000이나 되었다.

같은 화가가 그림인데도 이렇게 가격이 차이가 나는 것은 그의 그림의 예술성이 월등히 뛰어나졌기 때문이 아니라 김우환 작가의 인지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평가하는 것은 그림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시대적 장소적 특수한 상황 안에서 가지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카페 안에 존재하는 그림은 그림이 아니다. 그것은 장식품에 불과하다.

한 사례를 더 들자면, 불량아트를 들 수 있다.

인선오빠가 '불량아트'라는 타이틀로 강남 듀플렉스라는 카페에 전시를 한 적이 있다.

오빠는 보기에도 민망한 누드화를 카페 벽에 여기저기 걸어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카페를 찾은 사람들이 그 그림에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거북감을 느끼거나 불편해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사람들이 카페를 찾은 이유는 그림을 감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즉, 그림이 그림으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그림으로 대하는 사람들이 존재해야 한다.

그림이 공간을 통해 의미 창출이 이루어져야 예술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