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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boy 김현성 사진 작가 인터뷰_스크랩

건조한 느낌의 사진을 찍고, 패션과 환경을 동시에 다루는 잡지를 만들고, 균형 잡힌 태도로 생활하면서 '착한 세상'을 꿈꾸는 포토그래퍼 김현성을 만났다.



예술은 혁명이다. 그것이 크고 작건, 목적이든 수단이든, 또 성취하려는 바가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이런 거창한 명제를 끄집어낸 까닭은 건조한 느낌의 사진을 찍고, 패션과 환경을 동시에 다루는 잡지를 만들고, 균형 잡힌 태도로 생활하면서 ‘착한 세상’을 꿈꾸는 김현성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는 조금씩이나마 이상에 다가갈 수 있다면 포토그래퍼나 편집장, 무엇으로 불려도 상관없다는 듯이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상을 향한 엄청난 애정과 열정은 그 아래에 숨겨둔 채로.
 
에디터 이지영 | 사진 스튜디오 salt | 디자인 강혜정


인터뷰 요청을 위해 스튜디오로 전화를 건 날, 대한민국 서울에는 지진이 발생했다. 갑작스런 진동에 놀란 가슴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고, 방정맞게 실시간으로 뉴스를 검색하며 아이티 참사가 남의 일이 아니구나 했다. 마우스를 두드리면서도 온갖 자연 재해와 이상 기후, 환경 오염을 평소보다 백 배쯤 진지하게 걱정해 봤다.

김현성을 만나기 위해 스튜디오를 찾은 날은 회색 도시에 산성비가 내리는 수요일이었다. 책상 아래에 전기 난로를 끌어다 놓고 몸을 녹이며 그와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세상을 걱정하는 건 에디터뿐만이 아니란 걸 새삼 깨달았다. 동지에게서 발견한 ‘두터운 종이 한 장의 차이’가 있다면, 김현성은 훌륭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아주 자기다운 유연한 방식으로.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이 아주 천천히, 두고두고 이뤄진다 해도 결코 쉽게 마음이 변하지는 않을, 심지가 곧은 사람이다.

패션 및 상업 사진가로 대중에게 각인된 포토그래퍼 김현성은 친자식처럼 기르던 강아지가 죽자 작년에 < Oh Boy!> 를 창간했고, 이는 곧 세간에 화제가 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의 슬픔이 원천이 되어 환경과 패션, 문화를 아우르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퍼트리는 잡지가 탄생한 점이다. 잡지까지 만들 정도면 원래부터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았던 걸까? 그랬던 것 같다.

“사실 패션이라는 영역에 속해 일을 해왔지만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세속적인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에요. 과시나 허영이랄까? 물질적인 것들에 너무나 집착하고 살아가는 것도 그렇고요. 그러면서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웃음), 어쨌든 제가 성향이 좀 그래요.” 워낙 경제적인 논리로 급박하게 돌아가는데다 보여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알려진 ‘패션 월드’이고 보니,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예전에 모피 광고를 찍은 적이 있어요, 딱 한 번. 동물을 무지 좋아하는데 그런 일을 하고 나니 너무나 괴로운 마음이 들어서 받은 돈의 일부를 동물 보호 협회에다 기부했어요. 사실 굉장히 이율배반적이고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이지만, ‘나 아니라도 누군가는 찍을 것이고, 자기만을 위해 그 돈을 쓰도록 놔두는 대신 내가 조금이라도 기부하면 낫지 않을까’하면서 스스로를 합리화시켰죠. 비주얼 작업을 하는 것은 좋은데, 동물을 괴롭혀서 만든 옷은 너무 싫으니까.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럼, 그런 이미지가 없는 패션 잡지를 만들어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렇게 만들기 시작한 잡지에는 강한 목소리가 없다. ‘모피 코트를 입지 말라’든가, ‘개고기를 먹으면 야만인이다’하는 식의 이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 복지나 환경 보호를 내세웠지만 결국 근본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인간성의 회복이기 때문. “세상이 너무 각박하게 돌아가다 보니까 일단 자기 먼저 생각해야 되고 남을 돌볼 여유도 없죠. 정치도 서로 너무 미워하고, 사회도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배타적으로 대하고요.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면서 반대 입장에서도 생각해보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해 안타까워요.”

그는 동물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보신탕을 먹는 사람들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이 자기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자격의 선결 조건이라 여기는 탓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자꾸 바꾸다 보면 세상이 좀 더 인간적이고 따뜻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단다. 백 퍼센트 공감하면서도 심하게 이상적인 것 아니냐고 에디터가 넌지시 따져 묻자 곧바로 인정하는 그. “너무나 이상적이죠. 그런데 이상적일수록 그것을 이루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마련이잖아요. 저는 좀 길게 내다보고 싶어요. 우리가 다 죽고 나서도 세상은 계속 될 것이고, 그 때는 더욱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허황되고 몽상가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공상과학 영화에서처럼 자연은 더욱 황폐해지고 사람들끼리 더 미워하다 마침내 동물적인 본능으로 살아가는 세상이 오면 어쩌나 걱정이 많이 되요. 그런 것이 두렵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은 거죠.” 과연 편집, 배포, 영업까지 스스로 다 해내는 잡지 발행인답게 알찬 대답이 아닐 수 없다.


믿는 바를 분명하게, 그러나 부드러운 방법으로 자연스레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는 잡지뿐 아니라 사진을 통해서도 이러한 미덕을 착실히 드러내 왔다. 현재는 국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포토그래퍼지만, 그에게도 초보 시절은 있었을 터. 처음 카메라를 마주한 순간은 어땠을까. “원래는 산업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입시에 실패해서 조소과에 들어가게 됐죠. 그러던 중에 포토그래퍼 김중만 씨를 만났어요. 형이라고 부르며 일도 도와드리고. 그러다 사진을 제대로 공부해보면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은 거예요.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처음으로 구입한 카메라는 니콘 F4였는데, 그 전에는 아버지께서 해외 출장 길에 사오신 조그만 캐논 카메라나 펜탁스MX를 썼어요. 사실, 그 때는 비주얼 자체가 좋았던 거지 사진 자체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요. 꼭 사진이어야만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죠.” 그렇게 샌프란시스코로 떠난 그는 순수 사진을 전공했다. 근사한 풍경 사진을 찍으려고 차를 빌려서 네바다, 콜로라도, 유타 등지를 돌며 사막을 뷰파인더에 담았던 시절이다. “풍경 사진을 참 좋아해요.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는데 그 때는 멋있고 예쁜 광경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물론, 지금 보면 다 별로지만.”

솔직 담백한 김현성만큼이나 그의 사진은 장식적이거나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강한 이미지를 보여주긴 하지만 메시지를 왜곡하고 극히 주관적이라는 이유로 흑백 사진도 더 이상 찍지 않을 정도다. “예전에는 소위 말하는 ‘예쁜’ 사진, 그러니까 분위기 있고 빛도 화사하고 그런 스타일이 좋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사진들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더군요. 지금은 T2같이 작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상을 주로 담아요.” 하지만 ‘예쁜’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그가 몸담은 패션 및 상업 사진 분야가 아니던가? “그렇긴 해도 될 수 있으면 리얼한 사진을 보여주려고 해요. 예를 들면 인물 사진을 찍을 때도 흰 벽에 세워놓고 단순하게 가는 식으로. 저는 십여 년 넘게 사진을 하면서도 세트를 직접 만들어 본 적도 없어요. 클라이언트가 특별히 원하지 않는 이상은 세트가 들어가는 것도 거의 안 찍어요. 확실한 콘셉트나 정확한 계산이 없이 시선을 빼앗는 배경은 무의미한 것 같아서요. 그리고 저는 그냥 피사체 그 자체에 관심이 있고요.” 기르던 강아지들을 찍을 때 가장 행복했다는 고백에서도 느껴지듯, 피사체 그 자체에 대한 깊은 애정이 ‘김현성표’ 사진의 본질인 것이다. 문득, 고만고만한 패션 광고들 사이에서 충격적이고 신선하게 다가왔던 ‘Boy meet Girl’, ‘COOLDOG’ 등이 생각난다.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를 정도인 이 사진들은 그의 초기 작품인데, 역시나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지금처럼 스타 마케팅이 없던 당시, 길거리에서 캐스팅한 일반인을 모델로 세워놓고 마음껏 찍었던 사진들이다. 어떤 큰 제약도 없이 무언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느낌이 강했고, 그래서 더욱 신나게 작업할 수 있었다고 그는 즐겁게 회상한다.

패션 디자이너 진태옥의 아트북 또한 김현성이 손에 꼽는 작업이다. “진태옥 선생님의 경우, 우선 제 스타일을 무척 좋아하셨어요. 제 생각에도 아방가르드하면서도 구조적인 옷과 제 사진이 잘 맞는 것 같았고요. 모델의 얼굴이 잘린 컷도 있고, 조명도 간단하게 하여 ‘툭’ 찍은 듯한 사진들인데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시면서 서른 장 이상의 지면을 내주셨어요.” 건조한데다 어찌 보면 삭막하다 못해 날 것의 느낌이 나는 사진들. 그렇기에 어떤 메시지를 전하기는 힘들다고 볼 수도 있지만, 디자이너는 그의 그런 감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었던 것이다.

김현성은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다고 자부한다. 이는 작년 11월 < Oh boy!> 창간호를 만들 때, 그를 오래 겪어본 사람들이 두말없이 광고를 내어준 것으로 충분히 증명이 된다. “기본적으로 예전부터 잡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고, 뚜렷한 목표 의식이 생기면서 현실화 된 것이기에 크게 힘들지는 않아요. 사진은 원래 하던 일이고 디자인도 안정된 레이아웃에 베이직한 폰트를 사용하니까요. 또 하고 싶은 말은 마음껏 하는 대신 연예인 인터뷰 등을 첨가해 대중들의 관심도 어느 정도 이끌어 냈죠. 반응도 살필 겸 배포도 직접 해요. 다만, 무료로 운영하다 보니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한 광고 영업이 가장 어렵더군요. 그 전에는 일이 들어오면 사진을 잘 찍어주고 보수를 받으면 되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광고주에게 먼저 연락해서 매체 특성을 설명하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홍보하고 설득하고 그래야 하니까.” 그럼에도 굳이 무료로 잡지를 만드는 이유를 물으니 “내 생각을 전달하고 공유하자는 취지이고 아직은 미흡한 부분도 많은데 돈까지 받으면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라고 대답하는 그. 더욱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그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잡지는 배포처마다 동이 날 정도라 부수를 늘려야 할 상황이다. 그래도 광고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몇몇은 연간 계약도 언급해 앞으로는 괜찮을 것 같단다.

비주얼이라는 연결 고리 덕분에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은 그지만, 분야에 관계없이 원칙과 실질이라는 취향을 고집하는 것은 여전하다. “솔직히 말해 무게잡고 잘난 척하는 것은 다 싫다”는 그는 “너무 과감한 시도나 튀는 디자인은 아무래도 금방 질리고, 기본적이고 간결한 것이 오히려 제일 강력한 힘을 갖는 것 같다”고 주장한다. “그래픽적인 요소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고 주제와 콘텐츠를 제대로 뒷받침해주어야 좋은 디자인”이라는 정리도 곁들인다. 이러한 취향은 일상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심각할(?) 정도로 환경보호론자인 패션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의 시도를 존경하고, 가끔 장비를 실어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걷거나 대중 교통을 이용하고, 채식을 하려고 노력 중이라 순대국 대신 콩나물국밥을 먹는다는 김현성. 그는 무조건 포기하지 않고도 멋지고 품위 있게 일하고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김현성은 < Oh Boy!> 에 연재된 ‘My own private Seoul’처럼 서울에 관한 사진을 모아 동료 사진가들과 함께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유기견과 배우가 함께한 화보도 구상하고 있다. 개인전도 갖고 싶기는 한데 시간이 너무 없어서 큰일이라는 그. 하긴 다음 달 특집 기획은 무엇으로 할까, 채식을 하려면 식단을 어떻게 짤까, 관심사인 동물 복지에 어떤 도움을 주나를 매일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바쁠 것 같다. 그래도 그는 하나씩 이루어가겠지. 어떤 사진가로 남고 싶으냐는 마지막 질문에 그는 “세상에 어떻게 비춰질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사진을 비롯 매거진, 전시 등 모든 결과물들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노력한 사람’이라 인식되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의 마음을 착하게 만들기 위해,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 노력한 사람이요.”라고 답한다. 그러니 혁명을 꿈꾸는 예술가란 결국 이런 사람이 아닐는지. 나즈막한 목소리라 할 지라도 믿는 바를 실천하고 끝까지 유지해 나가는, 그래서 결국에는 깊고 풍부한 울림을 만들어 내는.



출처 : http://media.jungle.co.kr/cat_webzine
디자인 정글 2010년 3월호 artist : 그대는 나즈막히


2010-03-22 오후 9:4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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