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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ing

관광객이 아닌 한 사람으로써.



 얼마전의 일이었다. 한국에 놀러온 미국인 친구를 위해 난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그 친구를 만났다. 가장 먼저 나는 홍대를 택했는데 사실 집에서 가까울 뿐더러 대부분 젊은 미국인들이 좋아할만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외국인에게 한국을 소개할 기회가 생긴다면 꼭 제대로 준비해서 한국을 특별한 나라로 여기게끔 신경을 써서 소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것이 실현되니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홍대거리는 분명 미국문화에는 없는! 소소한 구경꺼리와 대학인들의 문화를 즐기는 공간이라 무척 흥미로워 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왠걸, 막상 데려가니 아기자기한 상점들도 다 지나치고 별로 예쁜 물건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잘 못데려왔나....생각에 잠겨 속으로 어쩔줄 몰라했다.

게다가 베지테리안이라니....! 홍대 유명한 회전초밥집을 데려가려고 했는데 이것마저 물거품이 되는 것인가. 원래 성격이 내성적인터라 별로 표현을 잘 안하는 줄은 알았는데 괜시리 의기소침해지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예정대로 난 반은 어쩔 수 없이 반은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회전초밥집을 갔다. 친구가 샐러드를 먼저 집어들어 먹은뒤 다음 음식을 골라잡는 그 5분의 시간이 50분처럼 느껴졌다. 사실 나는 한국인으로써 한국인의 문화를 알려줘야겠다는 절대적인 사명감에 사로잡혀있었는데 김이 다 빠져버렸다. 한국 음식이라하면 내가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떡볶이나 냉면처럼 길거리푸드가 제격인데 메운걸 분명히 못 먹을것이라는 생각이 애초에 생각조차 안하고 있는 터였다. 그렇게 그렇게 홍대에서의 하루는 저물고 다음에 만날날을 기약하며 우린 헤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북촌탐방을 하기로 한 날! 날이 무척 더워서 와우 오늘하루 정말 큰일이겠는데 하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한옥이 있는 한국 문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겠다 싶어서 잔뜩 기대하고 나온 터였다. 마침 예전에 '서울문화의 밤'이라는 행사에 스테프로 참여한 경험도 있어서 북촌은 자신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여전히 길을 휙휙 지나치는 내 친구. 감흥이 없는건지 아니면 눈으로 다 관찰하고 있는건지 좀체 종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내가 이곳 저곳을 데리고 들어다니며 구경을 시켜줘야했다. 이따끔씩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그게 참 묘했다. 미국에서도 실컷 볼 수 있는 고양이나 강아지 사진을 찍거나 가게 앞에 매달려 있는 꽃들을 찍는다.

그래서 매우 의아해하고 있던 차에 그 친구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나는 페이스북에 친구들이 한국에서 찍은 사진 좀 올려달라고 하면 대체로 찍은 사진들이 다 이상한 것밖에 없어서 친구들이 실망한다고. 그럴만도 했다.  관광객들이 흔히 찍고가는 한옥집이나 한번쯤은 사고싶을 법한 홍대의 팬시한 물건들은 뒤로하고 도대체 심지어 한국인들도 관심이 별로 없는 것에 관심을 가지다니.

그런데 나중에서야 이해가 갔다. 이 친구는 보통 자연을 주제로 작업을 많이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질감이나 무채색 계열의 선선한 색감이 그녀의 주된 관심사였다. 게다가 예술가아닌가. 남들이 다 관심을 가지는데 똑같이 관심을 가지면 그것은 그저 평범한 취향 혹은 관광객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관광객의 입장이기 이전에 개인적 취향이 먼저인 사람이었고 카메라보다는 눈으로 보는거에 더 익숙한 사람이었고 겉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안으로 느끼는거에 익숙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냥 그렇게 이해하면 될 것을  그녀의 반응에 눈치만 살피며 전전긍긍하고 있던 내가 부끄러웠다. 

 때로는 "너무 멋지다!" "아름답다!"라는 속이 빈 언어보다는 그녀의 작품을 통해 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더 깊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중요한 경험이었다. 전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보다는 어디를 가든지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는대로 이해할 수 있는 작은 여유를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관광투어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희는 이곳에 왔으니 이정도쯤은 느끼고 봐야한다'라고 똑같은 경험과 느낌을 주입시키는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개개인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여기를 왔다. 이것을 봤다. 를 증명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 것. 그것은 기념품을 사오거나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증명이 되었지만 오늘날 인터넷을 통해 무엇이든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런것들은 이제 더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주목해야할 것은 나만이 느낀 특별한 경험과 감정이다.

 그래서인지 한적한 삼청동 길을 걸으며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이 느낌이 좋아.."라며 눈을 감던 그 친구의 모습이 더욱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 친구는 비빔냉면과 떡볶이를 너무나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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